Lee-Hwang.jpg 퇴계 영정]] 이황 (李滉 1501년 - 1570년, 호 退溪 - '퇴거계상', 退居溪上의 줄인말)은 조선 명종 시대의 철학자, 정치가로서 율곡 이이와 더불어 한국의 성리학의 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다. 한국의 1000원권 지폐 앞면에 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이황은 27살이 되던 해 조선 중종29년(1534년) 식년 문과 을과(진사시와 생원시)에 급제하다. 34살이 되던 해에 문과 대과에 합격한 후 관직 생활을 시작하다. 49세에 그의 고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풍기군의 군수를 지낸 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도산으로 돌아와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여생을 보냈다.
이황은 70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조선 선조 3년에 그의 배움과 덕의 높음을 기려 영의정에 후사 되었으며 문순(文純)이라는 나라에서 내린 시호를 받았다. 조선 광해군 2년에 조선의 큰학자들인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과 더불어 조선 5현으로 받들어졌으며 성균관과 향교의 문묘에 봉정되어 우러러 받들어졌다.
이황의 가르침을 받은 이름난 학자로는 유성룡, 김성일, 정구를 손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