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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wang.jpg 퇴계 영정]] 이황 (李滉 1501년 - 1570년, 호 退溪 - '퇴거계상', 退居溪上의 줄인말)은 조선 명종 시대의 철학자, 정치가로서 율곡 이이와 더불어 한국성리학의 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다. 한국의 1000원권 지폐 앞면에 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생애


조선 연산군 7년(1501년)에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진성 이씨 이식과 그의 후실 박씨 부인 사이에서 7남 1녀중 막내 아들로 태어나다. 출생한지 일곱 달이 채 안되어 아버지를 여의다. 유년 시절 삼촌 이우의 밑에서 한문을 배웠다. 20세를 전후로 하여 중국의 주자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주역을 연구 하기 시작하다. 23세에 서울로 올라가 성리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성균관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당시의 성리학자들과 친교를 맺으며 처음으로 마음의 바른 자세를 가르치고 이를 생활에서 실천하는 책 심경주부(心經附註)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고 늘 생활의 반려로 삶게된되었다. 오늘날 성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이황의 사상을 '심학'(心學)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황은 27살이 되던 해 조선 중종29년(1534년) 식년 문과 을과(진사시와 생원시)에 급제하다. 34살이 되던 해에 문과 대과에 합격한 후 관직 생활을 시작하다. 49세에 그의 고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풍기군의 군수를 지낸 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도산으로 돌아와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여생을 보냈다.

이황은 70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조선 선조 3년에 그의 배움과 덕의 높음을 기려 영의정에 후사 되었으며 문순(文純)이라는 나라에서 내린 시호를 받았다. 조선 광해군 2년에 조선의 큰학자들인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과 더불어 조선 5현으로 받들어졌으며 성균관과 향교의 문묘에 봉정되어 우러러 받들어졌다.

이황의 가르침을 받은 이름난 학자로는 유성룡, 김성일, 정구를 손꼽을 수 있다.

퇴계의 성리학


퇴계가 한국 성리학에 끼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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