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新羅)는 고구려, 백제와 함께 삼국시대의 삼국 중 하나로, 현재의 한반도 동남부 일대를 차지하고 있던 국가이다. 7세기경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나당연합을 결성, 660년 백제를,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여, 이 이후는 통일신라로 불린다. 669년 발해가 세워짐과 함께 남북국시대의 남쪽 축이 되었다. 892년 견훤이 후백제를, 901년 궁예가 태봉(처음 이름은 후고구려)을 세움과 함께 후삼국시대가 시작, 양국의 공세에 버티지 못한 신라가 935년 고려의 왕건에게 항복하니 56대 922년 만에 멸망했다.
신라사는 크게 상대, 중대, 하대로 나뉘는데, 상대는 박혁거세 거서간부터 진덕여왕까지의 28대 771년으로, 건국 이후 부족국가에서 고대국가로의 발전 및 팽창으로 고구려, 백제와 양립하던 시기이다. 중대는 태종 무열왕부터 혜공왕까지의 8대 127년으로, 삼국통일 및 그 직후의 신라문화의 황금기이다. 하대는 선덕왕부터 경순왕까지의 20대 156년으로, 계속된 평화와 왕위 계승권 싸움으로 혼란해져 기울어간 시기이다.
계림, 사로, 서라벌 등으로도 불렸으나 지증 마립간 4년 504년 국호를 '신라'로 확실히 하며 왕에 대한 칭호를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에서 "왕"으로 정했다. 이 일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본래 신라가 자리한 서라벌지역에는 여섯 개의 촌이 있어 육부촌이라 불렸다. 각 촌에는 촌장이 있어 대소사를 관장하였고 6촌장들이 모인 화백회의가 있어 만장일치제로 6촌 전체의 문제를 결정하였다. 기원전 69년의 화백회의에서 6촌에는 임금이 없어 백성들이 법도를 모르니 임금을 추대하고 도읍을 세우자는 의견이 나와 이에 6촌장들이 산에 올라 서라벌 땅을 굽어보니 남산 기슭의 나정 우물가에 신비한 기운이 서려있어 모두 그곳으로 갔다. 우물가에는 흰말이 있었는데 6촌장들이 나타나자 말은 하늘로 오르고 우물가에는 큰 알이 하나 놓여있었다. 알에서 건장한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아이의 몸에서는 광채가 나고 뭇 짐승들이 모여 춤을 추었으며 해와 달이 밝게 빛났다. 6촌장들은 아이의 이름을 박혁거세라 칭하고 왕으로 추대하였다. 왕은 국호를 서라벌이라 하고 스스로를 거서간으로 칭했다.
박혁거세가 왕으로 추대된 후 어느 날, 샤량리의 알영 우물가에서 계룡이 나타나 겨드랑이로 여자아이를 낳았다. 여자아이는 얼굴이 아름답고 피부가 고왔지만, 입술에 닭의 부리가 달려있어 보기 흉했다. 사람들이 여자아이를 북쪽 시냇가로 데려가 씻기니 부리가 떨어지고 매우 고운 자태를 드러내었다. 아이가 자라 13세가 되어 왕비로 추대되었다. 아이의 이름은 알영이다. 사량리의 알영 우물가를 따서 이름을 지은 것이다.
삼국유사에서는 박혁거세와 알영의 나이는 같으며, 나라 사람들이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을 "성인"이라고 부르며 크게 좋아하였다고 한다. 한편, 삼국사기의 경순왕조에 따르면 옛날 중국에서 마한으로 피난간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박혁거세의 선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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