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성공회공동체(The Anglican Communion)는 전 세계 160여 개국에 38개의 독립적이고 자치적인 지역 관구 교회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자는 약 7000만 명이 있다. 성공회(聖公會)란 “하나이요 거룩하고 공번된 사도적 교회”(the One, Holy Catholic Apostolic Church)라는 전통적인 신경(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교회 개념을 한자로 번역하여 만든 교단 명칭이다. 성공회를 영국 교회(the Church of England)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영국의 성공회를 뜻하지 전 세계 성공회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이후 영국 교회는 에드워드 6세(1547-1553)와 엘리자베스 1세(1558-1603)의 치세를 통하여 개혁된 가톨릭 교회(the Reformed Catholic Church)로서 기본적으로 개신교 종교개혁의 길을 따라 정착하게 된다. 이러한 교리적․신학적 정착의 주춧돌은 Book of Common Prayer)와 *는" target="_blank" >한 나라의 국민들이 하나되어 자국민의 언어로(이전까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였다)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예배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했으며, [39개 신앙 신조는 극단적인 로마 가톨릭의 주장에 나타난 오류를 지적하는 동시에, 개신교 종교개혁에서 있을 수 있는 반대급부의 극단적인 편향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이로써 영국 교회는 그 개혁과정에서 독특한 교회 이해, 즉 “개혁되고 가톨릭적인” 교회라는 “중용”(viamedia)의 태도를 갖추게 되었다.
전 세계에 확대된 성공회 교회들은 영국 교회의 종교개혁 전통에 따라 자치적이고 독립적인 교회로 성장해 갔으나, 19세기 말부터는 역사적 기원과 신학적 이해를 공유하는 하나된 교회의 인식을 강화하고 세계성공회의 당면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람베스 회의(the Lambeth Conference)를 약 10년마다 열어 모이고 있다. 람베스 회의는 강제적 권한을 가진 법적 기구가 아니라 협의체이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세계성공회의 일치의 한 상징일 뿐 치리 권한을 갖지 않으며 각 나라의 성공회는 동등한 자치적인 권한을 갖는다. 1888년 람베스회의에서는 세계성공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위한 신앙적 기준을 마련했는데 이는 그리스도교의 기본적 신앙 선언을 함축하고 있다. 람베스-시카고 4개 조항(the Lambeth-Chicago Quadrilateral, 1888)이라 불리는 이 선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람베스 회의의 발전 속에서 거듭된 관심사는 지역 관구 교회의 독립성에 대한 인정과 교회의 일치에 관한 것이었다. 모순되는 듯한 이 해결책을 람베스 회의와 세계성공회는 “가시적 친교”라는 소명 속에서 “교제”(fellowship)와 “상호 친교”(intercommunion), 그리고 “상호 책임”(mutual responsibility)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고, 이를 위해 구체적인 협의 기구를 형성하여 일치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성공회는 1867년부터 1998년까지 모두 13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하여 세계 성공회의 일치와 타 전통 교단들과의 교제와 일치 등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켰다. 그 특징은 가시적이고 포용적인 태도, 민족적이고 자치적인 태도, 그리고 일치를 지향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성공회 공동체는 이러한 신학적 태도와 교회 이해에 기초하여 20세기 중반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교회일치운동(에큐메니칼 운동)에 신학적 근거를 제공하는 한편,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와는 다른 축으로 성서 비평과 신학적 자유주의에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자들은 광교회파(Broad Church)의 경향을 형성하여 신앙의 본질과 권위를 협소하게 이해하는 이상의 다른 태도들을 비판하고, 복음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적응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성공회 내의 이러한 다양한 전통은 서로에게 신학적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여러 모습으로 지금도 여전히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 태도의 다양성은 성공회의 전통을 분열시키지 않고 나름대로 성공회의 신학과 정신의 풍요로움에 기여하고 있다.
성서는 종교개혁의 출발점이었다. 즉 전통을 통해 굳어진 실체를 진리로 잘못 알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과 진리의 회복으로서 종교개혁이 존재하는데, 그 비판과 회복을 위한 최우선의 권위가 바로 성서인 것이다. 사실 이러한 성서의 권위는 전통과 교리에 빗대어 신학적 궁극성이나 절대적 원리를 내세우는 모든 주장을 상대화하려는 비판적 원리라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의 내적 성찰을 위하여 종교개혁 전통의 성서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오로지 성서로만”이라는 원리에도 약점은 있다. 즉 역사적인 발전을 간과하여 환상적인 원리적 신앙을 추구하기 쉽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러한 환상을 피하기 위한 인간 이성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때의 “이성”은 해석자의 자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성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며 교회 공동체가 함께 공유하고 판단하는 이성(cosmic and corporate Reason)이다. 또한 이성은 전통보다 앞선다. 전통은 이성을 통해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성의 역할은 합일이 이루어지는 원칙을 제공한다. 이성은 인간의 경험을 사물의 본질과 조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성서에 담긴 계시는 특정한 역사와 조건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이 다른 역사 속에서 재해석되려면 이성을 통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편 전통은 인간의 경험과 실천, 그리고 합의가 최종으로 만들어 낸 산물로서 교회의 중요한 권위이다. 즉 성서에 대한 이성적 작업으로 축적된 신앙의 결과물이 바로 전통인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은 성서와 이성에 의해 제공된 것에 종속되어야 한다. 전통은 성서에 속한 초자연적인 최고 진리를 가져다 줄 수 없지만, 개인적 판단의 위험성을 피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전통은 성서와 이성에 근거한 인간의 “실천, 경험, 동의”에 의해서 필요에 따라서 변경되고 폐지될 수 있다.
성공회는 이렇게 성서와 이성과 전통의 긴장 관계를 통해서 교회사에 나타나는 극단적인 주장과 오류를 피하는 “중용”의 정신을 구현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중용의 정신이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분열을 치유하고 일치를 추구하는 데 공헌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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