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檀君, 밝달임금)은 만주와 한반도 지역의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세운 시조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학계에서 받아들여진 단군에 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은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의 단편적인 기록이다. 고조선을 계승하는 《조선왕조실록》에는 단군이 중국의 요임금과 같은 시대에 최초의 나라를 세우고 백성들에게 의·식·주를 비롯한 온갖 예절을 가르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 숙종 2년에 북애자가 저술한 《규원사화》와 1979년 이후에 알려진 《환단고기》에 역대 단군들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있으나, 위서라는 의견이 있다.
《규원사화》에 의하면 '단군'의 명칭은 박달나무(檀) 임금(君)을 의미한다.
북조선 평양직할시 근처에는 1994년 "재건"된 단군릉이 있다.
무
최남선은 무당이 '단골'로 불리우는 것을 주목하여 단군을 제사장의 의미로 해석하였으며, 단(檀)을 제터(壇)의 다른 표현이라 하여 단군을 '壇君(단군)'으로 표기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최남선은 자기 시대 당시에도 서남부 지방에서는 무당을 "당골네"라고 부르는데, 일제 강점기 시골에서 무당을 "당골"로 호칭하는 것은 단군이 무군이었다는 흔적이라 했다. 당시 시골에서는 해방 뒤까지도 무녀(巫女)를 "당골네"라고 불렀는데, 이 것은 무녀가 성황당(城隍堂)·서낭당이 있는 고을(골)에 사는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에 무녀를 "성황당이 있는 골 여인"의 뜻으로 "당골네"로 부른 것이었다. 즉 "당골"은 "서낭당골"의 약칭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고 "당골네"는 무녀의 별칭이었다. 당시의 관행은 안마을에서 시집온 부인은 "안골네"라고 부르고, 밤나무 마을에서 시집온 부인은 "밤골네"로 부르는 것과 같은 관행이 널리 퍼져 있었다. 따라서 "당골"·"당골네"는 남자무당(박수무당)에게 대한 호칭이 아니라 여자무당(무녀)에게만 사용하는 호칭으로 "서낭골 여인"의 준말이었다고 본다. 따라서 무녀 호칭 "당골네"·"당골"은 단군을 무군이라고 보는 증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단군과 고조선 연구》, 단군학회 엮음, 지식산업사, 2005년, 409쪽]
무에서는 단군을 옥황천존, 삼신제석등과 함께 하늘신과 동일시하여 모신다.
역대 단군
단군고기
- 단군(檀君)
- 부루(夫婁)
- 1천 38년 만에 신(神)이 되었다.
- 금와(金蛙)
- 가섭원(迦葉原)에 부여를 세움.
규원사화
- 단군(檀君)임금 : 재위 93년
- 원년(기원전 2333년) 조선 건국. 우수하의 벌판에 도읍을 세우고 임검성(壬儉城)이라 하였다.
- 10년 (기원전 2323년) 패수 북쪽으로 도읍을 옮겨 평양이라 하였다. 갑비고차(강화도)에 제단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
- 20년 (기원전 2313년) 남이의 환란으로 부여를 파견하여 다스리고, 강화에 삼랑성을 쌓았다.
- 30년 (기원전 2303년) 대홍수.
- 40년 (기원전 2293년) 설유의 난으로 부여를 보내어 다스리게 하였다.
- 부루(夫婁)임금 : 재위 34년
- 원년(기원전 2240년) 즉위.
- 3년(凡三年) (기원전 2237년) 하늘에 제사.
- 가륵(嘉勒)임금 : 재위 51년
- 오사(烏斯)임금 : 재위 49년
- 구을(丘乙)임금 : 재위 35년
- 달문(達文)임금 : 재위 32년
- 한율(翰栗)임금 : 재위 25년
- 서한(西翰)임금 : 재위 57년
- 아술(阿述)임금 : 재위 28년
- 노을(魯乙)임금 : 재위 23년
- 도해(道奚)임금 : 재위 36년
- 아한(阿漢)임금 : 재위 27년
- 흘달(屹達)임금 : 재위 43년
- 고불(古弗)임금 : 재위 29년
- 벌음(伐音)임금 : 재위 33년
- 위나(尉那)임금 : 재위 18년
- 여을(余乙)임금 : 재위 63년
- 동엄(冬奄)임금 : 재위 20년
- 구모소(구牟蘇)임금 : 재위 25년
- 고홀(固忽)임금 : 재위 11년
- 소태(蘇台)임금 : 재위 33년
- 색불루(索弗婁)임금 : 재위 17년
- 아물(阿勿)임금 : 재위 19년
- 연나(延那)임금 : 재위 13년
- 솔나(率那)임금 : 재위 16년
- 추로(鄒盧)임금 : 재위 9년
- 두밀(豆密)임금 : 재위 45년
- 해모(奚牟)임금 : 재위 22년
- 마휴(摩休)임금 : 재위 9년
- 내휴(奈休)임금 : 재위 53년
- 등올(登兀)임금 : 재위 6년
- 추밀(鄒密)임금 : 재위 8년
- 감물(甘勿)임금 : 재위 9년
- 오루문(奧婁門)임금 : 재위 20년
- 사벌(沙伐)임금 : 재위 11년
- 매륵(買勒)임금 : 재위 18년
- 마물(麻勿)임금 : 재위 8년
- 다물(多勿)임금 : 재위 19년
- 두홀(豆忽)임금 : 재위 28년
- 달음(達音)임금 : 재위 14년
- 음차(音次)임금 : 재위 19년
- 을우지(乙于支)임금 : 재위 9년
- 물리(勿理)임금 : 재위 15년
- 구홀(丘忽)임금 : 재위 7년
- 여루(余婁)임금 : 재위 5년
- 보을(普乙)임금 : 재위 11년
- 고열가(古列加)임금 : 재위 30년
- 치세 기간은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1128년으로, 47대 1205년 간 지속되었다.
부도지
- 임검씨
- 동북방에 부도를 세워 부족들이 왕래하게 하였다.
- 부루씨
- 읍루씨
- 천부를 봉쇄하고 입산하였다.
- 후천 말세 이후 1천 년 간 치세.
환단고기
- 왕검(王儉)단군 : 재위 93년
- 기원전 2370년 5월 2일 인(寅)시에 탄생.
- 기원전 2333년 상달(10월) 3일에 즉위.
- 기원전 2283년 운사(雲師)인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三郞城)을 짓고 제천의 단(檀)을 마리산(摩璃山)에 쌓게 하였으니 지금의 참성단(塹城檀)이다.
- 부루(扶婁)단군 : 재위 58년
- 기원전 2231년 4월 밭을 나누고 밭문서를 만들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사사로운 이익을 구하지 않도록 하였다.
- 기원전 2183년 신지(神誌)인 귀기(貴己)가 칠회력(七回曆)과 구정도(邱井圖)를 만들어 바쳤다.
- 가륵(嘉勒)단군 : 재위 45년
- 오사구(烏斯丘)단군 : 재위 38년
- 구을(丘乙)단군 : 재위 16년
- 달문(達文)단군 : 재위 36년
- 한율(翰栗)단군 : 재위 54년
- 우서한(于西翰)단군 : 재위 8년
- 아술(阿述)단군 : 재위 35년
- 노을(魯乙)단군 : 재위 59년
- 도해(道奚)단군 : 재위 57년
- 아한(阿漢)단군 : 재위 52년
- 흘달(屹達)단군 : 재위 61년
- 고불(古弗)단군 : 재위 60년
- 대음(代音)단군 : 재위 51년
- 위나(尉那)단군 : 재위 58년
- 여을(余乙)단군 : 재위 68년
- 동엄(冬奄)단군 : 재위 49년
- 구모소(緱牟蘇)단군 : 재위 55년
- 고홀(固忽)단군 : 재위 43년
- 소태(蘇台)단군 : 재위 52년
- 색불루(索弗婁)단군 : 재위 48년
- 아홀(阿忽)단군 : 재위 76년
- 연나(延那)단군 : 재위 11년
- 솔나(率那)단군 : 재위 88년
- 추로(鄒盧)단군 : 재위 65년
- 두밀(豆密)단군 : 재위 26년
- 해모(奚牟)단군 : 재위 28년
- 마휴(摩休)단군 : 재위 34년
- 내휴(奈休)단군 : 재위 35년
- 등올(登兀)단군 : 재위 25년
- 추밀(鄒密)단군 : 재위 30년
- 감물(甘勿)단군 : 재위 24년
- 오루문(奧婁門)단군 : 재위 23년
- 사벌(沙伐)단군 : 재위 68년
- 매륵(買勒)단군 : 재위 58년
- 마물(麻勿)단군 : 재위 56년
- 다물(多勿)단군 : 재위 45년
- 두홀(豆忽)단군 : 재위 36년
- 달음(達音)단군 : 재위 18년
- 음차(音次)단군 : 재위 20년
- 을우지(乙于支)단군 : 재위 10년
- 물리(勿理)단군 : 재위 36년
- 구물(丘勿)단군 : 재위 29년
- 여루(余婁)단군 : 재위 55년
- 보을(普乙)단군 : 재위 46년
- 고열가(古列加)단군 : 재위 58년
- 치세 기간은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238년으로, 47대 2096년 간 지속되었다.
참고 문헌
- 세종실록 지리지
-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주해, 정신세계사, 1986년
- 규원사화, 북애자 편집, 주해, 고동영 번역, 한뿌리, 2005년
- 부도지, 박금 편집, 김은수 번역, 주해, 한문화, 2002년
각주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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